발자취 | 마음의 균형을 배우는 글
공장에서 마주한 오해와 이해,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순간들.
직장과 노동 현장에서 느끼는 인간관계의 온도와 마음의 균형을 담은 공감 에세이.
《관계의 길》 Ep.2
같은 공장, 다른 마음
아침 6시,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늘 그렇듯 출근 카드를 찍고, 장갑을 꼈다.
옆 라인에 있는 동료가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고생이네.”
그 말이 인사인지 위로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우리 일상은 단조롭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교대 직전이었다.
기계가 멈췄고, 반장이 다가와 말했다.
“아까 포장 라인에서 불량 나왔어. 네가 확인 안 했지?”
그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내가 했던 일도 아닌데 왜 나한테 묻는 걸까.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괜히 뒤집어씌우네.’

하지만 그날 퇴근 무렵, 다른 라인에서 일하던 누나가 말했다.
“그 반장도 요즘 윗선한테 많이 혼나는가 봐.
아침마다 얼굴이 하얗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식었다.
그도 나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다.
《논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역지사지(易地思之) — 입장을 바꿔보는 일은
현장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가장 어렵고, 그래서 가장 필요한 일이다.
내가 본 건, 내 쪽 풍경뿐이었다
공장에서는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언어다.
서로 기계 소음에 묻혀 말이 잘 안 들리니까,
표정으로 대부분의 감정을 읽는다.
그런데 그게 오해를 더 만든다.
며칠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내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기분이 안 좋나?’ 싶었는데,
일 끝나고 나서야 이유를 들었다.
“어제 일하다 허리 삐끗했어.
오늘은 말할 기운도 없더라.”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표정만 보고 마음을 판단하면
늘 절반은 틀린다.
누군가의 무표정 뒤에는 피로, 통증, 걱정,
혹은 그냥 말하기 싫은 하루가 숨어 있다.
한 번은 신입이 내 말을 무시하듯 굴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그는 첫날부터 긴장해서 실수할까 봐
모든 걸 스스로 하려던 거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갈등의 68%는 의도보다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인용 출처: Harvard Business School, Workplace Misunderstanding Study, 2023.
현장도 다르지 않다.
‘나를 무시했어’라고 느꼈던 순간의 절반은
사실 ‘그도 힘들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온도
점심시간엔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컵라면, 김치, 그리고 작은 대화.
어느 날은 조용히 밥을 먹고 싶은데,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고,
어느 날은 외롭다 싶을 때,
다들 휴대폰만 본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늘 일정하지 않다.
하루의 피로, 전날의 잠,
혹은 머릿속의 걱정 하나로도 온도가 바뀐다.
반장도, 신입도, 나도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누군가의 거친 말투가 불친절이 아니라
그날의 피로일 수도 있다는 걸,
나도 현장에서 배워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보다
그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상상하는 일이다.”
한 번은 동료가 내 몫까지 포장 작업을 대신해 줬다.
“오늘은 네가 좀 힘들어 보이더라.”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게 역지사지였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한 게 아니라,
그저 나의 피로를 알아봐 준 순간.
반장의 입장, 내 자리의 시선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 10분 전, 반장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
“이거 다시 포장해야 해. 내일까지 납품이야.”
이미 손끝은 아프고 허리는 굳었는데,
그 말을 듣자 짜증이 확 났다.
‘맨날 마지막에 일 시키고….’
하지만 그날 야간 근무자들이 오기 전,
그가 혼자 포장 라인을 정리하고 있는 걸 봤다.
그때 알았다.
그도 ‘시켜서’가 아니라 ‘함께 끝내야 해서’ 그랬던 거다.
그게 나중에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공장에선 모두가 누군가에게 치이고,
누군가를 대신 치게 된다.
윗사람이 나를 재촉하고,
나는 후임에게 짜증을 낸다.
그게 매일의 구조다.
그래서 역지사지는 결국 구조를 잠깐 멈추게 하는 힘이다.
“그래,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그랬겠지.”
그 한 생각이 들어오면, 분노가 잠시 멈춘다.
같은 일, 다른 마음으로
며칠 전 야간조에서 설비가 멈췄다.
엔지니어가 늦게 와서
다들 한 시간 넘게 손 놓고 서 있었다.
누군가는 불평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시계를 봤다.
나도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엔지니어가 도착해 허겁지겁 기계를 열 때
손에 굳은살이 깊게 배어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 사람도 나처럼 매일 이 소음 속에 사는구나.’
그날 이후, 누가 실수해도
예전처럼 쉽게 화가 나지 않는다.
서로의 자리에서 보면,
모두가 나름의 이유를 품고 있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 말은 전쟁의 전략이지만,
현장에선 ‘관계의 기술’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불필요한 다툼이 줄어든다.
하루를 버티는 지혜
퇴근 종이 울리면, 다들 같은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누군가는 동료에게 내일 점심 메뉴를 묻는다.
나는 늘 마지막에 현장을 돌아보고 나온다.

문득, 오늘 하루를 떠올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거칠게 굴진 않았을까?”
그 질문이 생기면, 하루가 조금 다르게 끝난다.
그게 역지사지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이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그 이해가,
내일의 공기를 조금 덜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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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
“입장을 바꾸어 보면,
이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면책 안내
이 글은 사자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인문 에세이입니다.
심리·경영·조직 이론이 아닌,
삶 속 체험과 성찰에 기반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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