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땀으로 배우는 마음의 균형
《관계의 길》 Ep.5
동상이몽(同床異夢): 同(같을 동), 床(침상 상), 異(다를 이), 夢(꿈 몽).
같은 침대에 누워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다

웅—— 쿵쿠덕.
찰카닥, 찰칵.
기계들이 돌아간다.
공장 안에는 늘 같은 소리가, 쇠와 기름이 섞인 냄새처럼 흐른다.
기어 부품이 투입되고, 기계가 먹고, 삼키고, 다시 내뱉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소화기관처럼.
그 규칙적인 리듬이 내 하루의 배경음이다. 때로는 자장가처럼, 때로는 채찍처럼.
처음엔 그 소리가 귀를 때렸고, 두통을 몰고 왔지만,
이제는 내 심장 박동이랑 거의 비슷하다. 몸이 그 박자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 이 소리가 멈추면 오히려 불안해질 지경이다.
한 손엔 장갑, 한 손엔 부품.
하루에 수천 번, 아니 어쩌면 수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어깨는 굳고, 눈은 피곤하며, 손끝은 장갑 안에서 묵직하게 뭉쳐있다.
공기는 습기와 기름 냄새로 끈적이고,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으로 쇳가루가 들어오는 것만 같다.
라인 옆, 1년 차 동료인 '김 군'이 말한다.
“오늘 물량 빡세다. 야근 각이야. 이번 달 안에 학자금 대출 이자만이라도 갚아야 하는데.”
그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말할 기운도 없었고, 무엇보다 서로 다른 속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김 군은 돈을 생각했다. 그에게 야근 수당은 꿈을 향한 실질적인 사다리다.
반면, 나는 손목을 걱정했다. 5년 전에 이미 한 번 염증으로 쉬었던 터라, 웅크린 채 부품을 잡고 있는 내 오른쪽 손목 인대가 오늘 밤 무사할지 두려웠다. 내일 당장 병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파스를 붙이고 버틸 것인지.
같은 라인, 같은 기계 앞, 같은 땀 냄새 속인데
마음은 완전히 다르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일당을 계산하며 가족여행 갈 날을 손꼽고,
누군가는 퇴근을 갈망하며 뭉친 근육을 풀 마사지 건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병원비를 걱정하며 잔업을 자처하고,
나는 그냥 오늘도 버틴 나 자신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
동상이몽(同床異夢) —
우린 같은 침상(라인)에 누워있지만, 다른 꿈을 꾼다.
공장의 시계는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지만,
각자의 마음속 시계는 완전히 다른 속도와 목표를 향해 달린다.
불협화음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찾으려는 싸움
공장은 늘 시끄럽다.
웅——, 쾅, 쿵쿠덕, 찰카닥.
소리가 겹치고 부딪히고, 다시 튀어나와 귓가를 때린다.
이 모든 소리의 총합은 ‘재촉’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실수 없이.”
기계는 쉬지 않으니 사람도 멈출 수 없다. 이 공장에서는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기계의 속도는 효율이고, 효율은 곧 생명이다.
하지만 몸은 기계가 아니다.
손이 느리면 욕을 먹고,
빨라지면 정밀함이 떨어져 불량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효율과 안전, 그리고 나의 생존이라는 삼각형의 중간 지점을 찾으려 애쓴다. 그곳이 바로 나만의 ‘속도의 중용’이다.
한 번은 반장이 소리쳤다.
“박 씨! 속도 좀 맞춰요! 옆 라인 밀린다고요! 그렇게 느려서 언제 물량 채웁니까!”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몸이 긴장하자 손이 굳어버렸고, 아주 미세한 순간이었지만 기어 한 개가 틀어졌다.
곧바로 경고음이 울리고, 빨간 불빛이 깜박인다. 불량.
라인 전체가 잠시 멈췄을 때의 정적은 그 어떤 굉음보다 무겁고 날카롭다.
그날 퇴근 후 락커룸에서 혼자 앉았다.
기름 묻은 옷을 갈아입었지만, 기계 소리는 머릿속에 남아서 계속 돌았다.
웅, 쿵쿠덕, 찰카닥.
그게 내 하루의 전부였고, 내 존재를 규정하는 소리 같았다.
이 일은 단순하다.
나사 조이기, 부품 맞추기, 버튼 누르기. 반복과 반복.
그 단순함이 때로는 깊은 생각 없이 몸을 맡길 수 있는 위로가 되지만,
또 때로는 나라는 존재를 갉아먹는 공허함을 안겨준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이게 나의 생계이고,
내 손으로 버는 삶이니까. 멈춘다는 것은 곧 삶의 균형을 잃는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중용》의 구절이 떠올랐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희로애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우리는 같은 라인에 서서 '돈', '퇴근', '생계'라는 '동상이몽'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제품을 완성해야 한다. 이 서로 다른 마음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속에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절도(節度)를 잃지 않고 전체 라인의 조화(和)를 찾으려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중(中)'의 실천이다.
같은 소리 속에서도
누군가는 돈의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두려움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섞어 그냥 살아있다는 소리로 듣는다. 그게 내 중용이다. 이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기름때 속에 새겨진, 각자의 삶을 버텨낸 증거

퇴근 방송 음악이 울린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들리는 듯
기계가 멈추면
공장 안엔 거짓말처럼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수백 대의 기계가 동시에 입을 다무는 순간.
그 짧은 정적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진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장갑을 벗으면 손바닥 전체에 기름때가 시커멓게 박혀 있다.
쇳가루가 손금 사이에 끼어 반짝인다.
그걸 보며 문득 생각한다. 이 기름때가 바로
오늘 하루도, 이 손으로 정직하게 벌었다는 증거라고.
옆 동료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주식 앱을 켠다.
“이번 달 월급은 얼마나 나올까? 퇴근하자마자 치킨에 맥주다.”
다른 동료는 담배를 문 채 연신 손가락 관절을 꺾는다.
“손가락 또 저리네. 내일은 좀 낫겠지. 이러다 관절염 오겠어.”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둥굴레차를 한 모금 마신다. 입안에 아직도 쇠 맛이 남아있어, 따뜻한 차가 그 텁텁함을 씻어 내린다.
손가락 저림이 심한 날, 나는 락커룸에서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손목 스트레칭을 3분간 한다. 특히 손목 터널 증후군 예방에 좋다는 동작을 반복한다. 기계 소리가 멈춘 고요함 속에서, 내 몸의 소리를 잠시 들어주는 것. 이 작은 자기 돌봄의 루틴이 다음 날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나의 건강 관리이자, 이 힘든 삶을 버텨내는 비밀 병기다.
모두 같은 공간, 같은 라인에 있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과 내일의 기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 일터도 완벽한 동상이몽이다.
누군가는 이 일을 “잠깐 거쳐 가는 임시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이 일을 “은퇴할 때까지 함께 할 평생직장”이라 믿는다.
나에게는 그냥 “오늘 하루, 정해진 절도(節度) 안에서 살아낸 소중한 자리”일뿐이다.
퇴근길, 공장 불빛이 멀어진다.
귀에는 아직도 웅~ 쿵쿠덕~ 찰카닥 소리가 잔상처럼, 환청처럼 남아 있다.
그 소리가 내 귀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오늘이라는 노동이 끝난다.
하지만 내일 아침,
그 소리는 정확히 9시 정각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불협화음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마음으로 또 하루를 버티겠지.
같은 라인에 서서, 서로 다른 꿈을 꾸며, 그러나 함께 조화(和)를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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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
같은 라인에 서 있어도 마음의 방향은 다르다.
그 다름을 견디며 자기만의 조화(和)를 찾는 하루가,
우리를 함께 일하게 만드는 힘이다.
면책 안내
이 글은 사자성어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자동차 부품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인문적 체험 에세이입니다.
경영적 조언이 아닌, 실제 노동 현장의 경험과 마음의 균형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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