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마음의 균형을 배우는 글
《견고한 길》 Ep.1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흐릿한 세상이 밝아진다
불편즉명(不偏則明) 아닐 불 不 치우칠 편 偏 곧 즉 則 밝을 명 明
편향되거나 치우침이 없을 때, 비로소 사물이 밝게 보인다는 의미.
【유래】 중국 고전 《서경(書經)·홍범(洪範)》에서 유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서 유념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공정함을 지켜야만 세상을 명료하게 통찰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성현의 가르침입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릴 때, 세상은 흑백으로 흐려진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들은 점차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 양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지나치게 빠르고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안전 제일주의’에 갇혀 지나치게 느리고 소극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는 말을 과하게 쏟아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려 하고, 어떤 이는 침묵이 상책이라 여기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오직 자기 확신에만 과도하게 의존하여 타인의 조언을 무시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타인의 눈치에만 기대어 하루를 보낸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 늘 불확실한 경계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특히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 온몸의 피로와 함께 찾아오는 사소한 감정의 동요는 나를 괴롭혔다. 그 새벽의 정적 속에서, 전날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거대한 울림통이 되어 마음을 과하게 잡고 흔들었다.
또 다른 누군가의 피곤해 보이는 표정에는 내가 원하지도 않은 '나에 대한 불만'이라는 의미를 과하게 덧씌웠다.
당시에는 이 모든 피로와 감정의 널뛰기를 그저 내 성격이 원래 ‘예민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하고, 남들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정의 내리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는 감정의 소모를 겪으며 알게 되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대해 내 마음이 한쪽 끝으로 쏠려버리는 ‘치우침’이었다.
마음이 ‘피해 의식’이라는 한쪽 끝으로 쏠릴 때, 세상의 색은 단순한 흑백 논리로 변질되었고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를 공격하는 ‘적’과 나를 이해하는 ‘아군’이라는 이분법에 갇혔다. 그 흐림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느라 소모된 에너지는 나를 뼛속까지 지치게 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불편즉명(不偏則明)이라는 고전의 가르침이었다. 편향이 없을 때, 비로소 세상의 이치가 밝아진다는 이 말은, 나에게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좋아 보이는’ 방향에도 지나치게 맹신하며 빠지지 않고, 내가 피하고 싶은 ‘나빠 보이는’ 상황에도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을 때, 비로소 나의 삶과 눈앞의 현실은 가장 선명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직장에서 무너지는 마음은 사실 ‘힘든 업무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극단의 감정으로 쏠릴 때 찾아왔다. 어떤 날은 작은 실패에도 일이 전부 끝난 듯 온몸의 기운이 빠지며 무기력증에 빠졌고, 어떤 날은 사소한 칭찬 한마디에도 현실을 초월한 듯 과한 자신감과 오만이 올라와 쉽게 흥분했다. 이 모든 것이 극단적 치우침이 만든 감정의 숙취였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치우쳐서 삶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그 치우침이 시작되는 미세한 징후를 스스로 눈치채고 제어하지 못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음을. 균형을 잡는 일은 고된 수련이 아니라, 치우침을 알아차리는 ‘자각’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극단은 소모를 만들고, 균형은 견고함을 만든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는 늘 폭포수처럼 많은 정보가 오간다. 공식적인 보고서, 상사의 지시, 직원들 사이의 소문, 때로는 감정적인 책임, 그리고 오해까지.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적인 욕구와 편견에 따라 ‘듣고 싶은 정보’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이는 인간이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본능이지만, 이 본능이야말로 마음의 평정을 흐리게 하는 가장 큰 적이다.
한동안 나는 상사의 ‘권위’에 과하게 집중하는 편이었다. 상사가 무심코 던진 단 하나의 말이나 행동은 머릿속에서 몇 배로 증폭되어, 나의 하루 전체를 불안과 긴장으로 흔드는 날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 보고서, 뭔가 핵심이 빠진 것 같네"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나를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거다',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나보다'라는 극단적인 해석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다음 보고서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거나, 혹은 그 불안감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 반대의 시기도 있었다. 너무 지치고 피로해서 모든 것을 ‘무관심’으로 버티려 했던 날들. ‘괜찮겠지’,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라며 모든 정보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날에는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업무 신호나 동료의 협업 요청을 놓쳐 결국 더 큰 곤란에 빠졌다. 이것이 바로 치우침이 가져오는 '소모와 실수'였다.
하버드 인지심리 연구(2022)는 우리의 경험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제시한다. "감정이 극단에 있을 때 인간의 판단 정확도는 평균 37%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적 치우침이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치우치면 시야가 흐려지고, 흐려지면 업무에서 실수를 하게 되며, 그 실수는 결국 마음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특히 야간 근무와 불규칙한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는 정신적 균형과 신체적 균형이 분리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몸이 피곤하면, 감정도 쉽게 피로해지고 짜증이 난다. 감정이 피로해지면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극단적인 판단으로 쏠려버린다. 균형이 깨지면 수면 리듬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근본적인 시스템인 자율신경계마저 교란되어 만성적인 긴장 상태(교감신경 항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단순히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을 넘어, 마음이 치우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일종의 ‘내부 기준’을 의식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던지는 두 가지 질문이다.
- 감정의 속도 점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불안, 기쁨, 분노)의 크기가 현재 발생한 사건의 규모에 비해 과하게 치우친 건 아닌가?"
- 판단의 방향 점검: "지금 내가 내리는 판단이 오직 나의 이익이나 나의 편견, 혹은 나의 불안이라는 한쪽으로 쏠린 건 아닌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잠시 멈추는 ‘의도적인 정지’ 과정을 거치면, 머릿속을 뒤덮었던 감정적인 안개가 걷히고 사물을 보다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일, 그것이 불편즉명이 말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기본적인 자기 관리 기술이었다.
치우침이 없는 사람은 겉모습이 강렬하거나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내면의 마음이 매우 단단하다.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이 치우침 없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어떤 파도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길을 견고하게 갈 수 있다.
극단적인 감정 소모는 결국 사람을 지치게 하고, 균형 잡힌 마음은 오랫동안 사람을 굳건하게 지탱시킨다.
치우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다

어둠이 내린 후 퇴근해 집에 들어와 현관의 불을 켜는 짧은 순간, 하루의 소음과 피로가 씻겨 나가며 하루 전체가 오롯이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 순간을 활용해 잠시 멈춰 서서, 오늘 하루 내가 어떤 편향과 치우침 속에서 움직였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보는 루틴을 만들었다.
감정이 과하게 치우쳐 사람들과 충돌했던 날도 있었고, 일에 대한 판단이 너무 급하게 한쪽으로 쏠려버려 실수를 만들었던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업무의 속도가 너무 치우쳐 나만 혼자 앞서가다 동료들과 발이 맞지 않았고, 어떤 날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욕심에 치우쳐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치우침의 결과물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편에는 항상 내가 잃어버렸던 ‘내 중심’이 있었다. 치우침을 줄이는 것은 결국 잃어버렸던 나다움, 즉 자기 중심을 되찾는 행위와 같았다. 그 중심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불편즉명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심오한 기술이다.
고전 《중용(中庸)》에서는 균형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 과유불급).” 또한, “기울면 곧게 하고, 지나치면 덜어내라.”라고 가르친다. 이 문장은 대단한 철학서의 문구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지침서에 가깝다. 삶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적당하고 치우치지 않은 균형이라는 좁고 견고한 길 위에서 굴러간다는 뜻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일을 도맡아 해서 에너지를 고갈시키며 지쳐 쓰러지는 것도, 너무 적게 일하며 현실에 안주하여 발전이 없는 것도, 둘 다 중심을 잃은 치우친 상태이다.
잃어버린 내 중심을 다시 잡으려면, 지금 내가 어떤 극단에 서 있는지 잠시 '정신적인 후퇴'를 해야 한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의식적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판단을 재정비하며, 과열된 속도를 조절하는 ‘내면의 정지 버튼’을 누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불편즉명은 거창한 명언이나 신조가 아니라, 매일매일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실용적이고 견고한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것을. 마음이 치우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선명하게 현실을 통찰하고, 가장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매일매일 견고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첫 번째 지혜이다.
오늘의 한마디
삶의 균형은 억지로 잡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치우침의 징후를 발견하고 그 방향에서 의도적으로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면책 안내
이 글은 사자성어 ‘불편즉명(不偏則明)’을 현대인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신체적 균형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개인적 경험을 녹여낸 인문적 에세이이며, 전문 심리치료·의학 조언이 아닌 개인적 성찰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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