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마음

〈졸졸상경(拙拙常輕) — 완벽하지 않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발자취의 산책 2025. 11. 17. 08:16

발자취 | 마음과 몸의 균형을 배우는 성찰 에세이

《담담한 길》 Ep.2




완벽이라는 무거운 족쇄를 풀다


졸졸상경. 어수룩할 졸, 항상 상, 가벼울 경. 서툴러 보여도 마음은 가벼운 상태를 말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 말은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지나 계속된 실패와 무너짐을 겪어 보니, 진짜 나를 무겁게 만들었던 건 늘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 글은 그 시절을 지나오며 남긴 성찰이다. 완벽을 쫓으며 건강과 평화를 잃었던 경험, 그리고 그 무게에서 벗어나며 얻은 가벼운 태도에 대한 기록이다.

완벽주의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던 순간


직장 생활 초년, 가장 두려웠던 건 실수가 아니었다. 내가 서툴러 보일까 하는 마음이었다. 단순한 질문 하나도 쓸데없는 시선이 돌아올까 싶어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야간 근무는 더했다. 실수 한 번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분위기에서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작은 실수가 곧 나라는 사람을 규정한다는 압박 아래, 문서 하나도 완벽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하청 직원이라는 위치도 무게를 더했다. 본청의 지시는 절대적인 우선순위였고, 대응이 조금만 늦어도 바로 윗선의 질책이 내려왔다. 인원이 부족해도 변명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구조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몰아넣었다. 보고서를 수십 번 고치고,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중독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더 무거워졌다. 표정 하나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었고, 감정은 늘 억눌러야 했다.



엑셀 시트가 아닌, 몸이 기억한 것들


완벽을 따라가며 내 몸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특히 수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본청에서 오는 전화는 시간과 상관없이 울렸고, 새벽 두 시, 네 시의 전화는 일상이었다. 깊은 잠은 사치였고, 눈을 감고 있어도 언제 울릴지 모르는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생활은 만성 피로와 예민함을 만들었고, 면역력은 크게 떨어졌다. 엑셀 시트 속 숫자들은 정확하게 맞추려 했지만, 정작 내 몸은 천천히 고갈되고 있었다.

"완벽주의적 스트레스는 몸의 '잠재 에너지'를 선이자로 끌어다 쓰는 것과 같다는 은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만성적인 긴장 상태가 지속될 때 교감신경계가 과활성화되어 코르티솔(Cortisol) 분비가 증가하며, 이때 인체는 회복보다는 '당장 생존'에 에너지를 우선 배분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면의 질이 극도로 저하되고 면역 기능과 회복 능력이 저해되면서, 결국에는 높은 이자—만성 피로, 무기력, 신체적 취약성—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보내는 서툰 신호를 무시하고 완벽을 향해 달리는 것이 곧 내일의 건강을 미리 당겨 쓰는 행위입니다."


완벽주의는 성취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관련 연구에서도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실제 성취율은 높지만 일상 만족도는 일반보다 훨씬 낮다고 보고했다. 내가 느껴온 공허함과 허무함이 바로 그 결과였다. 작은 기쁨을 누릴 여유도 사라졌고,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불안과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고 일상 만족도는 평균 대비 약 40% 이상 낮아진다는 행동심리 연구 결과가 있다.
출처: Thomas Curran·Andrew P. Hill, 완벽주의와 심리적 부담 연구, 2021년 발표.



기업의 소멸, 그리고 깨달은 진실



나는 회사가 평생 직장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젊음을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완벽한 대응과 밤샘 작업도 기꺼이 감수했다. 하지만 본청이 문을 닫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었다. 수많은 기록과 보고서는 한순간에 의미를 잃었고, 그 안에서만 가치가 있었던 능력과 태도 역시 함께 사라졌다. 회사가 사라지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폐업 후 반복된 이직 시도는 더 차갑고 현실적이었다. 나이가 들자 정규직은 구경조차 어려웠고, 계약직 자리마저 감사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는 나를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으며, 진짜 자산은 회사가 요구한 완벽함이 아니라 내가 지속할 수 있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잘하는 사람보다 오래 가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완벽한 사람보다 가벼운 사람이 더 멀리 간다.



졸졸상경의 태도를 찾아서


졸졸상경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서툴러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어색한 순간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씩 쌓아가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얻는다. 능숙함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성실함은 어떤 환경에서도 남는다.

완벽을 쫓으며 단단해지려 할수록 오히려 쉽게 부서졌다. 마음은 굳어 있었고 작은 충격에도 흔들렸다. 반대로 어수룩해 보이는 태도는 유연하고 가벼웠다. 고집이 적고 집착이 줄어 오래간다.

도덕경 제76장은 ‘유약승강강’,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보다 오래 버틴다고 말한다. 강한 것은 쉽게 부러지지만, 약한 것은 흐름 속에서 형태를 바꿔 살아남는다.
출처: 노자, 도덕경 제76장, 기원전 4세기경.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샤워할 때 느껴지는 그 짧은 안도감처럼,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 마음이 가벼워진다. 실수나 서툼이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삶은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서투름 속에서 찾는 나만의 리듬


야간 근무를 반복하고 글을 쓰다 보니 내 몸과 마음의 리듬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서툼을 숨기려 했지만, 지금은 그 서툼조차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일의 리듬, 휴식의 리듬, 글쓰기의 리듬. 이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블로그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어, 정보형 글에 집착하며 누락만 경험했다. 이제는 내 리듬대로 천천히, 흔들리지 않고 글을 이어갈 생각이다. 방향만 맞으면 된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결국 나의 삶을 지탱할 것이다. 서투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은 사람이 가장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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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몸만 상한다. 서툰 당신의 리듬을 믿고 가볍게 걷는 것이 결국 가장 먼 길로 이어진다.

면책 안내

이 글은 사자성어 졸졸상경을 현대인의 삶과 감정에 맞춰 해석한 인문적 에세이이며, 의료·심리 치료 조언이 아닌 개인적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